제21절 총랑공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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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총랑 광갑(光甲)의 장자 사혁(斯革)은 송오공파 모암공파가 되고 2자 종혁(從革)은 문의파가되었으며, 3자인 원혁(元革)은 조선 태조조에 총랑을 지내고 장자 맹사(孟思)와 2자인 중사(仲思)의 후손은 무전하다. 3자인 계사(季思)는 음사로 출사하여 주부와 진보현감을 지내고 자 창(倡)은 창신교위를 지냈으며 천안군 목천면 연춘리에 정착하였고 계사(季思)의 6세손 원걔(元凱)가 선조조때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로 2등공훈하고 자 구연(九淵)도 부친을 따라 왜적을 섬멸하여 2등훈에 책되고 효성 또한 지극하여 쌍천귀석(雙川龜石)에 정자를 짓고 제액하되 복구(伏龜)라하여 복구정이라는 지명이되었다. 후손은 총랑공 복구정파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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