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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종친회
작성일 2007-04-23 (월)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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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시조 기사 (세계일보)
이규원 객원전문기자의 대한민국 통맥풍수]<26>강릉 김씨 시조 묘와 귀화 성씨

김춘추(신라 29대 무열왕)를 죽음 일보 직전에서 구해 낸 신라인 온군해(溫君解)가 원 총리와 같은 조상일 가능성이 있어서이다.

원 총리를 반기는 마음은 강릉 김씨 문중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로 관향(성씨의 고향)은 다르지만 두 김씨가 한 조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 김씨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생몰년 미상)은 김춘추의 셋째 아들인 문왕(文王)의 5세손이다.

온군해(?∼648)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군사원조를 얻으러 당나라에 들어갔던 김춘추가 해상으로 귀국 도중 고구려 순라병을 만나 체포당할 위기에 빠졌다. 재빨리 김춘추와 옷을 바꿔 입고 대신 죽음을 맞은 수행원이 온군해다. 후에 진덕여왕이 대아찬 벼슬을 추증하고 자손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때마침 원 총리가 한국에 오던 날 강릉 김씨 시조 묘를 다녀왔다. 궂은비에 황사바람까지 몰아쳐 만개한 벚꽃이 ‘꽃비’로 변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 285-1. 길가 이정표에 ‘명주군왕릉’이란 안내 입석이 있다. 강원도 기념물 제12호이며 안내문에는 군왕으로 불리게 된 경위가 기록돼 있다.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785년) 38대 왕통을 잇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당시 태자 책봉서열 1위였던 김주원도 참석을 서둘렀으나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갈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왕위는 김경신에게 넘어 갔고 곧이어 원성왕으로 즉위했다. 김주원은 모향인 명주(강릉의 옛 지명)로 이거하고 관향을 강릉으로 삼으니 이로부터 강릉 김씨 시조가 되는 것이다.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명주 양양 삼척 울진 평해를 식읍(食邑)으로 내리고 명주군왕으로 봉해 다스리도록 했다. 뒤에 김주원의 아들 헌창과 손자 범문이 중앙정부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다른 기록도 있다. 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를 못한 김주원이 이곳으로 내려와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세력을 형성하였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칭하여 졌다는 내용이다. 후삼국시대 명주지방의 대표적인 지방호족이 되며 고려초에는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여 공을 세우고 더욱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아직도 천재지변이 가로막은 왕위계승이 한으로 남은 것일까. 지금도 시제를 지낼 때 비가 내리면 진설된 제수품만은 젖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에도 한국풍수지리중앙회 거봉 김혁규 회장과 10여명의 제자들이 간산길을 함께해 산 공부에 몰입한다.

묘역에 들어서니 가히 왕릉 규모다. 인(동에서 북으로 30도)입수 신(申·서에서 남으로 30도)파니 신자진(申子辰) 수국이다. 갑좌(동에서 북으로 15도) 경향(서에서 남으로 15도)으로 거의 회룡고조(용맥이 꺾어 돌아 입수룡을 바라보는 국세)에 가까운 혈장이다. 자고로 반드시 각(角)이 있어야 내룡이며 입수(入首)라 했다. 직사각형의 분묘가 아래위로 용사되었고 당판의 기단은 3단으로 축조돼 있다. 조선 명종 때 강릉부사와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낸 후손 김첨경에 의해 다시 복원된 것이다.

일행들에게 거봉이 국세를 설명한다.

“좌청룡 쪽의 병방(丙方)에서 급히 올라온 입수룡맥이 인(寅)입수로 용틀임하며 갑좌로 앉았으니 말 그대로 활룡(活龍)입니다. 이렇게 박환(剝換)이 심한 혈장에서는 청룡과 백호자락에 향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행룡길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이 거칠어지는 것 아닙니까.” 용맥에 올라서니 좌청룡 끝과 좌향이 맞닿는다. 김주원의 아들과 손자가 신라의 중앙정부에 항거했다가 실패한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백호가 아주 잘 감싸고 돌았어요. 후손들은 재물을 넉넉히 모으면서 외손쪽으로 발복하여 번창했을 것입니다. 내백호가 좌측 청룡 파구를 가로막아 보이지가 않잖아요. 풍수 전래 이전에 마치 신기가 내려 점지한 명당 같습니다.”



묘역을 내려오며 1984년에 창건된 능향전(陵享殿)을 보니 일자각(日字閣)이다. 거봉의 보학(譜學)지식이 풀어져 나온다.

“일자각은 3칸 日자로 지어져 황제에게 제향을 올리는 곳입니다. 중국이 조선은 제후국이라 하여 日자각을 못 짓게 하고 정자각(丁字閣)을 세우게 했어요. 황제는 ‘폐하’로 호칭했고 군왕은 ‘전하’로 불렀잖습니까. 약소국의 비애지요.”

그러면서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의 홍릉과 유릉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연호를 광무(1897년)라 정하고 청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실질적인 권한행사 여부를 떠나 이때부터 황제폐하로 불렸습니다. 이래서 고종릉과 순종릉은 제향을 모시는 곳이 일자각입니다.”



동행 중에 신창 맹(孟)씨가 있어 귀화 성씨에 관한 얘기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김춘추를 사지에서 구하고 대신 죽은 온군해도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 성씨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 왔으며 고구려 때 평강공주와 혼인해 평원왕의 부마가 된 온달장군을 시조로 삼고 있다.

귀화 성씨의 원조를 꼽자면 3000여 년 전 고대 기자조선으로까지 소급된다.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귀화인이었다. 화산 이씨 시조 이용상은 베트남 첫 독립국가인 ‘리씨왕조’의 왕족으로 13세기 초 고려로 귀화했다.

고려 말에는 역대 왕들이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으며 몽골 혈통이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원의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지 않고 살게 된 위구르 출신 장순룡은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다. 귀화인들 가운데는 아랍 이란 네덜란드인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공을 세운 시조도 많다. 여진족으로 이태조를 도와 조선왕조 창업에 크게 공헌한 퉁두란은 개국일등공신으로 종묘 공신당에 배향되었다. 청해 이씨로 사성(賜姓) 받으며 시조(李之蘭)가 된다.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귀화해 일본군과 싸운 왜장 사야가는 김씨를 사성 받아 우록 김씨의 시조(金忠善)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씨는 260여개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 130여개가 귀화 성씨라는 통계다. 거의가 희성(稀姓)이어서 후손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덕수 장씨와 한양 조씨 등은 100만이 넘기도 한다. 오래된 귀화 성씨 중에도 1000명 미만, 심지어는 500명도 안 되는 성씨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1년에 1억명 이상의 인구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결혼이 급격히 증가하여 새로운 성씨의 탄생이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한국 거주 외국인 수도 1.1%에 달하며 20여개 나라의 외국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 한국인이 외국인과 결혼한 사례는 4만3000여건인데 이 같은 비율은 전체 결혼의 13.6%나 된다.



이 중 농촌지역은 그 비율이 높아 3분의 1에 육박하고 있다. 외국인과의 결혼으로 2만5000여명의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있으며 초·중·고생이 8000여명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통계 앞에 단일민족이란 개념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일행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때로는 ‘극단적 민족의식’과 ‘융합적 사고방식’이 충돌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지만 “세상 추세가 달라져 변한 걸 어찌하겠느냐”는 수용적 자세가 많다.

묘역 입구에 반듯하게 지어진 숭열전과 신도비각이 눈길을 끈다. 전각 안의 정간사에는 세조의 왕위찬탈을 평생 비웃고 산 생육신 김시습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그는 명주군왕의 23세손이다. 비문은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짓고 국회의원 김진만(37세손)씨가 숭열전을 건립했다.

대개 시조의 묘는 그 연원을 정확히 찾을 길 없어 단(壇)으로 모시거나 중시조를 내세우는데 강릉 김씨는 그 세계(世系)가 뚜렷하다. 세계가 흔들리면 입보(入譜·혈계가 확실치 않은 후손을 족보에 올리는 것)자가 늘어 혼란을 빚기 마련인데 후손들에게 큰 짐이 되기도 한다.

원자바오 총리가 온군해와 같은 조상의 혈계임이 확인된다면 강릉 김씨와 경주 김씨 문중은 중국의 온씨들을 만나 감사의 뜻이라도 전하면 어떨까 싶다. 민간외교로 큰 몫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국내의 온씨 문중들과도 새로운 만남이 시도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인·온세종교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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