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칼럼
작성자 서울종친회
작성일 2008-05-02 (금)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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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공학박사


 

우리의 자랑스런 선조 김양


 

-강릉김씨 인터넷 족보 탄생을 축하하며-


 

  나는 젊은 시절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농업 수리시설인 전북 김제 벽골제(碧骨堤)에 놀러간 일이 있다. 그때 촌로로부터 “벽골제 증축에 크게 기여한 분이 바로 강릉김씨 김양(金陽)이란 인물이다”고 한말을 기억하고 있다. 신라시대 장보고(張保皐)사망후 청해진(淸海鎭)의 피해가 막심하자, 당시 신라 조정의 대신 이었던 김양은 청해진 백성들을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벽골군(지금의 김제시)으로 이주시켜 대대적인 수리사업을 통하여, 김제 평야의 농업을 발전시키므로써 오늘의 우리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는데 공헌하신 분이시다.



  이순신 장군 어록중 “이나라의 군량미를 호남에 모두 의존하였으니 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이나라 또한 없었을 것이다(國家軍儲 皆靠湖南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유명한 글귀가 있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식량위기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통일신라시대 우리 선조인 김양의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아왔겠는가 하는 다소 과장된 생각도 든다.

 

  조선시대  사학자 서거정(徐居正)은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지으면서 신라시대의 인물을 거론하였는데 “신라의 영웅호걸은 김유신(金庾信)이요 공명정대 한분은 강릉김씨 김양이다” 라고 평한바가 있다. KBS 사극 해신 장보고 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김양은 우리의 시조이신 명주군왕의 증손(曾孫)이시다. 삼국사기 열전에 의하면, 김양이 태어난 것은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9년-서기 808년)때이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신라 제 45대 신무왕(神武王)옹립에 결정적 공을 세웠으며, 생전에는 시중(侍中) 벼슬을 지내셨고, 사후에는 태종무열왕의 능렬에 배장(陪葬)되신 분이시다.


  어디 우리선조가 신라시대 김양 한분뿐 이랴, 고려시대 여진 9개성을 반환 받는데 공헌한 문하시중(門下侍中) 김인존(金仁存), 조선시대 한국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하신 생육신 김시습(金時習),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날개의 작자 이상(본명 金海卿), 현존하는 인물로 “숲속의 시인에게”로 유명한 재소(在蘇)작가 아나톨리 김 등 수많은 명현 지사를 배출한 가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역사를 간과하며 후손을 위한 배려가 결여되기 쉽다. 바쁘다보니 우리 조상들의 업적과 훌륭한 능력을 모르고 지내기 일쑤다. 이러한 시점에서 을유대보(乙酉大譜)의 오자, 탈자, 계보 등을 교정하여 세계 최초의 인터넷 족보가 탄생된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아울러 대종회로부터 특별위원장직을 맡아 수행하신 서울종친회 김재경 회장께도 감사를 드린다.



2008. 5. 2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공학박사 

  (강릉김씨서울종친회 고문) 

김환기

이름아이콘 김승남
2008-05-06 19:17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벽골제 증축은 삼국사기 권 제10 신라본기 제10 원성왕편에는
원성왕 6년 봄 정월에 종기(宗基) 를 시중으로 삼았다. 벽골제(碧骨堤)를 증축했는데 전주(全州)등
일곱 주의 사람들을 징발해 공사를 일으켰다.로 되어 있는데 교수님께서는 김양(金陽)이란 인물이
증축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여 글을 올림니다. 벽골제는 김양의 조부 김종기 시중께서 증축
하셨다고 합니다.
   
이름아이콘 김환기
2008-05-07 16:22
관심을 가져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천 몇백년전 일이라 논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의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다음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1. 벽골제의 축조목적은 담수 저수지 외에 해수 방조제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축조나 증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착공시기, 준공시기, 기여도등을 정확히 기록하기가 어려울 것임. 따라서 벽골제 증축에 기여한분은 여러 사람일 것임. 김양도 그중 한분임.

2. 일부 역사기록의 애매함-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벽골제의 축조는 신라 16대 흘해왕 21년(서기 330년)이라 기록되어 있음. 그러나 서기 330년대 이곳은 백제 영토이므로 정확한 축조년대는 백제 제11대 비류왕(서기304-344년)때이고, 증축은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780년대부터 850년대까지 이어졌다는 설이 있음.

3. 강릉김씨 득관유래에는 김종기 선조가 벽골제 제방을 쌓았고, 그리하여 이곳 지명이 이분의 성을 따서 金堤로 불린다로 기술되었음. 그러나 김종기 선조는 신라제38대 원성왕(서기785-798년)시절에 사신분이고, 벽골제의 축조시기는 서기330년경임. 또한 金堤의 金은 벼의 색깔이 황금빛 이므로 金 자를 땄다고 김제문화원 에서는 말함. 임병주지음의 삼국왕조실록을 보면, 통일신라 제 38대 원성왕 이후 제 46대문성왕 때까지 강릉김씨 중 시중벼슬과 무진주도독을 지낸 분은 김헌창, 김양 임.
   
이름아이콘 유승철
2008-05-09 15:57
안녕하세요...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나톨리 김은 진천김씨란 설이 있는데요.
   
이름아이콘 김환기
2008-05-09 17:35
아나톨리김에 대하여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임규찬 지음의 “비평의 창”에 보면 아나톨리 김은 1908년 러시아로 이주한 진천김씨 집안의 후손으로 소개되어 있음.
  진천김씨는 강릉김씨 시조인 명주군왕의 19세손인 김사혁(金斯革)이 시조이고, 강릉김씨 송오공파 후손으로 분관했으나 1982년도 파보에 합보 하였으며, 항렬도 강릉김씨와 같은 ‘卿.振.起.南.來.東’등으로 쓰고 있음, 참고로 1985년도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한에 총 653가구 2,545명이 살고 있다고 소개된바 있음.

2. 아나톨리 김이 1990년 2월 3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을 보면 “15세기의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인 김시습(金時習, 강릉김씨 23세손)이 나의 선조였다”로 기술되어 있음.
  또한 아나톨리 김은 2005년 제3회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으며 동아일보 김기현 특파원과의 대담에서 “아나톨리김은 강릉김씨로 시인 이상(본명 金海卿, 강릉김씨 36세손)의 후예다”라고 하였음.(동아일보 2005년 9월 12일자 참조)
   
이름아이콘 김웅기
2009-01-09 16:04
강릉김씨라는 것이 자랑스럽네요. 좋은 내용을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름아이콘 김동유
2011-06-20 15:38
잘 읽고 갑니다. 연전에 대부님 고향 성기 마을에 갔었고 선영 여러분 산소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열 대부님 자택에 들러 형제분의 일가 사랑 이야기도 잘듣고 왔읍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후세번영에 힘써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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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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